우리 민족의 혼과 같은 백범 김구선생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필자는 학창시절 김구에 대해서 자세히 배우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 또한 자세히는 몰랐으리라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임시정부 수립 년도만 외우게 했을 뿐이었다.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틀을 마련한 기둥이자, 일제를 무서움에 벌벌 떨게 했던 무장독립운동의 정점에 있었으며, 광복 후 단일정부를 주장하는 우리 한민족의 아버지였다. 그러나 그의 의지와는 다르게 남과 북은 철책을 기준으로 갈라섰고, 그는 안두희에게 암살당한다.
* 당시 안두희는 서북청년단의 지시에 의해 움직였다는 설이 있다.
* 향후 안두희는 박기서의 정의봉에 살해당한다.
개인적으로 억지로 영웅을 만드는 행위를 좋아하지 않는다.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없다'는 말은 사회를 살아가는 전세계인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 '털어서'라는 말은 과거까지 싹 다 털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성역화되어있는 영역의 사람들에 대한 비판은 조심스럽다. 무조건적 반민족프레임을 씌워버리는 사람들의 일방적인 주장과 싸우는것도 싫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의심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마음 편하게 임할 수 있으니, 백범일지에 대한 내 생각을 적어보겠다.
우선, 김구인가 킬(Kill)구인가? 와 같은 논란이 왜 생기는지, 실체적진실, 역사적진실은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볼 준비가 되어 있어야한다. 우리가 생각했던 위인,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했던 위인이라고 해서 무조건적 감싸기는 옳지 않다.
킬구라는 표현은 치하포 사건에서 나오게 된다. 치하포 사건은 후술할 터인데, 개인적으로 포장이 더 큰 포장을 낳고, 솔직하지 못함이 오히려 오점으로 남아버린것 같아 안타깝다.
만약 백범일지의 내용 중에 당시 치하포사건에 대해서 '내 행동이 옳지 못했음을 뒤늦게 직감했다. 하지만 당시 조선을 침탈해오던 일본에 대한 내 분노는 말할 수 없었고, 국모가 일본낭인들에 의해 시해되어 내 적개심은 극에 달했다. 그가 칼을 차고 있는것을 본 순간, 나는 그가 일반 일본인 상인은 아니라는 생각에 분개하여 달려들었다.' 정도로만 했어도 이렇게까지 논란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일지에는 상대가 조선말도 유창하였으며, 칼을 휘두르며 다가왔으며, 일본군 중위 신분이었고, 800냥을 뺏어서 주변사람에게 나눠주라고 줬다고 하였으나
공판 당시 조서를 보면 상대는 통역을 데리고 다녔으며, 칼을 먼저 휘두르지 않았고(국밥이 먼저 일본인에게 가자, 김구가 다가가서 몇가지 질문을 던진 뒤 밖으로 끌고나와 폭행살해한것으로 보임. 그것도 1차 조서에서는 발로 차고 돌로 때렸다라고 했다가, 2차 조서에서는 내용이 바뀜), 일본인 상인이었으며, 칼과 돈을 훔쳐 당나귀를 타고 떠났다는 내용이 나온다.
또한 임금(당시 고종)이 김창수(당시 김구의 이름)의 죄가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국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저지른 일임을 알고 전화를 걸어 형 집행 중지(사형 중지)를 명했다고 하였으나, 이 또한 논란이 많은 부분이다.
치하포사건은 1896년, 처분 결정은 1987년 1월 경.
서울과 인천감리서 간 시외전화 가설기록은 1897년 11월, 사용기록은 1898년 1월에만 존재.
고종이 전화로 칙명을 내려 김구의 사형을 중지하라고 하였다는 내용은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게 사람들의 주장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할 부분은 음력과 양력의 차이이다.
* 1896년 한성과 인천간 최초 전화설립의 기록은 음력 기준이다. 양력으로 따진다면 1897년인 셈이다. 이 궁중용 전화는 관에서 사용한 행정전화였으며, 1902년에 이르러 각 지역에 민관 모두가 사용가능한 전화국이 개설된다.
* 양력으로 보아 당시 전화가 개설된것은 맞는것으로 보이므로 신뢰할 만한 내용으로 보이나, 고종이 직접 전화를 걸어 형 집행중지를 했다는 것은 신뢰성이 떨어진다. 사용기록이 존재할 정도면, 고종이 사용했다면 분명 기록이 남아있을터인데. 고종이 김구의 사형집행에 대한 상소를 계속 재가하지 않았다는것을 보아 한성-인천 간 관내 통화에서 내용이 넘어 전달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김구의 업적은 취하하되, 오점에 대한 부분은 우리가 담대히 받아들이고 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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